1. 개척기 (1970 -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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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교회가 설립될 당시 성수동 지역은 서울에서도 가난한 시민들이 주로 살고 있었던 변두리 낙후된 지역이었습니다. 제1대 담임 이남인 목사 가족이 개척지를 정하고 목회를 시작하여 교회의 모든 기반을 처음부터 하나씩 만들어 가며 전도에 힘쓰고 교회 건축을 위한 대지 확보에 주력한 시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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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에 교회가 점점 성장하면서 76년 3월 7일에 처음으로 시작된 「70일 전도 여리고 작전」은 성수교회가 성장 발전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으며 매주 토요일에는 성도들이 일대일 전도를 시행하였습니다.

2. 성장기 (1980 -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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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에 성수교회는 설립 10년 만에 크게 성장하여 성전 건축을 완공하였습니다. 성수교회의 성장기에는 활발한 전도활동과 함께 기도 운동이 활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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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건축하기까지 10년 동안 매주 금요일 아차산으로 올라가 전 교인들이 철야기도를 했습니다. 광주 기도원에서는 속장 기도회가 열렸습니다. 교인 전체가 모이면 기도하는 분위기가 정착되었던 것입니다.

3. 부흥기 (1990 -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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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외적으로 교회의 이름이 알려지고, 전 교인들이 하나가 되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활발하게 부흥성장을 이룬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 교회는 「70일 전도 여리고 작전」을 활발하게 하였고, 전국 목회자를 대상으로 하는 여리고 전도 작전 교역자 세미나를 개최하여 한국교회에 하나의 전도 모델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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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년도부터 본격적으로 국외 선교 사업이 시작되어 인도와 중국에 각각 성수 교회의 이름으로 선교사를 파송하기도 하였습니다.

4. 발전기 (1995 -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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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는 성수교회의 발전기로서 교회의 모든 사역들이 깊은 뿌리를 내리며 성숙의 단계로 접어들게 됩니다. 성도들이 일치된 순종과 헌신이 있었기에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지역사회에도 유관기관들과 협력하여 이웃들에게 적극적으로 봉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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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년 IMF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을 때 교회의 성미통은 아무나 쌀을 퍼 갈 수 있도록 나눔을 실천하기도 하였습니다. 수해가 나면 장년들은 물론 청년, 학생들 까지 파주, 문산, 의정부, 충청도까지 찾아가서 이웃사랑을 실천하였습니다.

5. 가속기 (2000 -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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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새 천년의 시대를 맞이하여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이 성수교회는 시대의 흐름에 민감하게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였습니다.
1) 예배의 변화 - 멀티미디어 예배로 매주일 찬양과 영상이 담긴 예배를 드리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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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선교 사역의 확대 - 인도에 선교센타를 세워 인도 카라나타카주의 복음화를 위한 신학교 사역과 개척교회 사역을 펼침
3) 교육의 강조 - 젊은이들을 위한 전담 교역자를 두어 젊은이 예배가 신설되고 교육관 건축을 위해기도
4) 사랑의 실천 - 사랑의 자원봉사 호스피스 사역과 독거노인 돕기, 무료 미용봉사 등 봉사 활동 시작

6. 제2대 담임 부임 (2005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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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대 담임 이남인 목사님 은퇴와 그 후임으로 군종감을 지내셨던 박상칠 목사님께서 부임하셨습니다.
1) 새 생명 전도교육 실시 - 장로, 권사, 집사 모든 임원들이 새 생명 전도 활동
2) 사랑의 차봉사 - 매주 월요일 연합여선교회에서는 비전약국 앞에서 지역주민에게 차 봉사
성도들이 함심하여 기도하고 봉사하면서 교회 부속건물 매입과 부지 매입 등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준비
7. 제3대 담임 부임 (201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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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대 담임목사로 교회 개척 경험과 교회성장 및 중대형교회 목회 경험을 가진 강유형 목사가 부임하였습니다. 현 담임목사는 그 동안의 목회 경험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목회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시설 개선, 예배 갱신, 새로운 교육 체계 수립, 관계 전도 실시, 교육 및 기도사역 강화, 교회 내외의 선교 봉사 활동, 다양한 소그룹 활동 등을 펼치고 있습니다. 신학, 기독교 상담학, 치유 상담학, 목회학 등을 두루 전공하였으며, 부흥회와 각종 세미나 및 전도 전문 컨퍼런스 강사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